탐구하다 팀 이야기

탐구하다팀의 이야기

특성화고 선배로서 먼저 마주한 수험생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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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하다 리더

이새영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두번의 실패

수학 17점. 전교 꼴찌. 그리고 두 번 실패한 17살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까지 저는 프로야구선수가 꿈이었습니다. 야구에 모든 걸 걸었고, 공부는 등한시했습니다. 그런데 경기를 할수록 실책이 쏟아졌고, 감독님과 동료들의 질책 속에서 좋아하던 야구공이 점점 무서워졌습니다. 부상으로 쉬는 동안 복귀할 때가 다가왔는데, 다시 그라운드에 서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어머니께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고, 훈련 막바지에 찾아가서 인사하고 끝냈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야구를 그만두고 매일 PC방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문득 '배우가 되면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1 2학기, 급하게 예고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대본을 겨우 외워서 시험장에 들어갔고, 떨어지는 건 당연했습니다. 간절함만큼은 컸고, 야구에 이은 연속된 실패였기에 좌절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17살에 실패가 두 번. 스스로가 루저라고 느껴졌습니다. 한동안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고, 방에서 잠만 잤습니다.

공부만이 내게 남은 유일한 것이었을 때

한 달쯤 지났을 때, 방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쓴소리 한 번 없이 저를 지지해주셨던 분들. 잘하는 게 하나 없고 보잘것없는 저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셨는데, 그 아들이 지금 폐인처럼 누워만 있다는 게 너무 죄송했습니다. 실패한 부끄러움보다, 이렇게 쓰러져 있는 내 모습이 더 부끄러웠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말고사 3일 전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토록 등한시하던 공부가 제게 남은 유일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3일을 밤새 공부한 결과, 성적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뿌듯했습니다. '제대로 하면 1등 할 수 있겠는데?'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말도 안 되는 확신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2학년 1학기, 전교 1등을 목표로 모든 걸 쏟아넣었습니다. 결과는 중위권. 절치부심해서 기말고사를 준비했지만 여전히 중위권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를 붙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왜 나는 안 돼?"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시가 내게 남은 유일한 것이었을 때

특성화고에서 고2 1학기까지 내신을 말아먹은 저에게 남은 길은 정시뿐이었습니다. 주변 모두가 '적당히 대학 가라'며 수시를 권했지만, 적당한 대학은 저한테 의미가 없었습니다. SKY에 가고 싶었습니다. 고3이 되고, 다짐 하나를 세웠습니다. 지금부터 단 하루도 놀지 않고 매일 공부한다. 실제로 9월 모의고사 날 영화를 보며 잠든 하루를 빼면, 수능까지 매일 공부했습니다. 그래도 성적은 마음대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1~2등급의 벽은 높았고, SKY에 가겠다는 말은 주변의 웃음거리였습니다. 4월 모의고사에서 국어 4등급을 받았을 때, 한 친구가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국어는 4등급이라며? 병신~"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던 7월, 몸에 탈이 났습니다.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사로 면역력이 무너져 결핵 확진을 받았습니다. 독한 약 때문에 전보다 훨씬 피곤하고 집중도 안 됐습니다. 그래도 SKY에 가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매일 공부했습니다. 9월 모의고사까지 전 과목 3등급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매일 주어진 공부를 해나가는 것뿐이었습니다. 10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고3 담임선생님이 성적표를 건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뒤집혔네?" 전 과목 1등급. 9월까지 3등급이던 성적이 한 달 만에 터졌습니다. 그간 말해온 SKY라는 목표가, 말뿐인 허세가 아니라 진짜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탐구하다

그간 과외와 멘토링으로 많은 후배들을 만나며, 저처럼 헤매는 학생들을 많이 봤습니다. 특히 국영수는 준수한데 직업탐구 성적이 안 나와서 대학이 낮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대로 된 교재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서 혼자 잘못된 방법으로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의지가 있다면 누구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세워주는 것. 그것이 탐구하다를 시작한 이유입니다.

교재 집필 및 문항 출제

이하람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특성화고에서 정시를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같은 길을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는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전공에만 몰두했습니다. '특성화고 전형은 개꿀 전형이니까, 나중에 마음먹으면 대학은 어떻게든 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1학년, 2학년을 보냈습니다. 3학년이 되어서야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상위권 대학의 특기자 전형이 사실상 전멸해버린 겁니다. 2년간 쌓아온 전공 활동을 입시에 쓸 수 있는 길이 막혔습니다. 내신으로 수시를 쓸 수는 있었지만, 수시로 갈 수 있는 대학의 고점과 정시로 갈 수 있는 대학의 고점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저는 정시를 택했습니다. 2학년이 끝나고 겨울방학, 그때부터 독서실에 틀어박혔습니다. 수능까지 고작 300일. 무모하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매일 10시간, 300일

1월 한 달간의 총 공부시간이 300시간이었습니다. 설날 연휴가 끼어 있었지만 하루 10시간 이상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6시 40분에 일어나 아침밥을 꼭 챙겨 먹고, 8시에 독서실에 앉았습니다. 아침을 안 먹으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 탓에 그건 어떤 날에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22시, 늦으면 22시 반에 집에 돌아와 잠들었습니다. 모든 과목이 4~5등급이었습니다. 수학은 '쎈' 전 문제를 두 번씩 풀었고, 국어는 같은 독서 지문을 두세 번 읽으며 백지에 정리했습니다. 아무리 지루하고 머리가 아파도 한 책을 끝까지 붙잡았습니다. 이 한 권조차 끝내지 못하면 수능은 나를 환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BS만으론 부족했던 직업탐구

직업탐구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EBS 수능특강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용은 난잡하게 나열되어 있어 어떤 게 중요한지 구분할 수가 없었고, 문항은 수능과 동떨어진 지엽적인 것들뿐이었습니다. 한동안 직탐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국어와 수학에서 기출 분석의 효과를 체감하면서, 직탐도 결국 평가원 기출을 제대로 분석하는 게 핵심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2022학년도 수능부터 모든 기출 문제를 다운받아 한 문항씩 뜯었습니다. 단원별로 중요한 포인트를 정리하고, 반복 출제되는 부분을 도식으로 만들어 암기했습니다. 그렇게 수능 마지막 교시, 탐구 두 과목에서 모두 1등급을 받았습니다. 수능 당일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탐구 두 과목의 OMR을 마킹하고 나서, 40문항이 전부 맞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16시 37분, 4교시 종료령이 울렸습니다. 감독관이 OMR을 걷어가자마자 저는 책상에 거의 엎어졌습니다. 어제까지 계속됐던 지옥 같은 공부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느낌. 내일부터는 마음껏 놓아도 된다는 해방감. 중간고사가 끝난 날과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합격자 발표가 났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서 새내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이 직탐을 알려달라고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선 기출 한 세트 풀고 나한테 와라." 그리고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유형의 문제를 틀려왔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이 과목을 통달한 저에게는 친구들의 약점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모든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부분이 교재에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은 걸까? 왜 텍스트 나열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수능이 끝난 저는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교재를 쓰고, 교습법을 연구하고, 자작 문항까지 밤을 새서 만들었습니다. 그 교재로 과외를 받은 세 명의 학생은 전원 1등급으로 수능을 마무리했습니다. 2025년에는 수능 직업탐구 영역 최초의 실전 모의고사 'Team 직탐'을 발매했습니다. 당해 기출과 평가원의 출제 패턴을 분석해 만든 이 실전모의고사는 26학년도 수능에서 13문항이 적중했습니다.

탐구하다

기출을 분석하고, 문항을 출제하고, 실전 모의고사까지 직접 만듭니다. 시행착오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교재, 1등급을 위한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을 제시하겠습니다.

교재 집필 및 강의

김서연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고3 겨울, '특성화고 정시 입시 결과'를 검색했습니다. 나오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선택 과목은 뭘 골라야 하는지, 어느 학교에서 특성화고 전형으로 학생을 뽑는지, 합격한 선배들의 공통점은 뭐였는지. 전부 직접 찾아야 했습니다. 검색해도 안 나오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습니다. 특성화고에서 대입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감정은 '막막함'입니다. 선택지가 많다는 건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뭘 골라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지가 많으면, 잘못 고를 확률만 올라가는 겁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많이 봤습니다. 내신 반에서 2등, 과에서 5등 안에 들던 친구는 수시에 올인했다가 결국 인서울을 못 하고 수도권 사립대에 갔습니다. 간호학과를 목표로 과탐을 선택했던 친구는 주요 과목에 투자할 시간까지 빼앗기고 결국 재수를 택했습니다. 일반전형이 인원을 많이 뽑는다는 사실에 매몰되어 특성화고 전형의 특수성을 무시한 탓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4월쯤 카톡으로 물어왔습니다. "직업탐구는 어떤 과목이 좋아?" 처음부터 그 길을 갔으면 1년을 버리지 않았을 겁니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것보다, 뚫린 갓길로 달리는 게 낫습니다.

1년을 가르는 선택

저도 갈팡질팡했습니다. 고1 때는 큰 생각 없이 다들 내신을 챙기니까 같이 공부했고, 전교 10위권의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멀리 보았을 때 메이저 특성화고에서조차 내신만으로는 인서울이 쉽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2학기부터는 내신 공부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2까지는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어와 수학 학원은 꾸준히 다녔지만, 솔직히 노는 데 집중했던 18살다운 1년이었습니다. 고3이 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6월 모의평가를 기점으로 주요 과목 성적이 더 이상 오르지 않았습니다. 7월부터 탐구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국영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직탐에 시간을 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적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7월, 8월, 9월. 세 달간 제자리였습니다.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오르지 않는 과목에 매달리는 동안, 확실하게 올릴 수 있는 과목을 버리고 있었다는 걸.

늦게 방향을 바꿨습니다

10월. 남은 시간은 두 달이 채 안 됐습니다. 직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개념서를 1회독한 뒤에는 모든 시험지의 기출을 2회 이상 분석했습니다. 어떤 개념이 왜 틀리게 나오는지만 끝까지 확인했습니다. 한 달 만에 직업탐구 만점을 받았습니다. 수능 날 탐구 두 과목 전부 만점. 그 성적을 기반으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이름 하나가 바꾼 것들

대학에 와서 느낀 건, 단순히 합격했다는 결과 이상의 것들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깨는 교양 수업,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먼저 닦아본 어른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기회. 이런 건 대학에 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막연히 보는 걸 좋아했던 게임 리그를 직접 운영해보고 싶어서 들어간 동아리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진로가 열렸습니다. 보기만 했을 때는 몰랐던 스태프들의 역할을 직접 해보니 적성에 맞았고, 이스포츠 PD라는 분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분야의 원로격인 분이 우리 학교 교수님이셨고, 랩 인턴까지 이어졌습니다. 대학에 오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들입니다.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꿀보직에 걸려서 가만히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었습니다. 근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어쩌다 대학 이름을 말하게 되었는데, 시선이 확 바뀌었습니다.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확실히 자세가 다르네." "쉴 때 쉴 줄 아는 것도 능력이야." 아까랑 똑같이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때우는 건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같이 농땡이 피우는 사람에서, 시간 배분을 잘하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대학 이름 하나로 사람들이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과정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학 이름은 학창 시절 12년을 보장해주는 보증 수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게 공정하지는 않지만, 현실은 그랬습니다.

탐구하다

같은 시간을 투자하면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으로서, 이제는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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